어쩌다 담배
담배, 하면 밝은 이미지보다 고민과 번뇌 같은 단어들이 더 빨리 떠오르는 것 같다. 얼마 전 할로윈 저녁에는 아주 오랫동안, 새벽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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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담배, 라고 하는 책도 있던가? 아마 없던 것 같다. (건강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신이 되어가는 요즘에 사람들이 과연 이런 책을 출판하고 싶어 할 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여기에서 나는 내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짤막하게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인간은 도대체 왜 피우는가, 피우면서 뭔 생각을 하는가, 뭘 피우는가, 어디에서 피우는가 등등. 오늘은 티엠아이 대방출이다. 참고로, 오늘은 마지막 부분에 특별부록이 있으니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부록이 있으므로 음악은 오늘 생략합니다.
시작
절친한 친구가 오랜 흡연자인데 그 친구와 그토록 자주 만나면서도 굳이 담배를 따라 피워보고 싶던 적은 없었다. 사람들이 담배를 시작하게 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겠으나 (그런데 이 말을 쓰면서도 그 가지각색이 무엇일지 구체적으로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내 경우는 몹시 속상한 일로 꽤 오래 고생하고 있었을 때 하필 옆에 서 있던 그 친구 담배가 손에 들어온 경우다. 음, 보통 주변에 흡연자 친구들이 있으면 담배를 배운다고 하는데 반은 맞지만 또 반은 틀린 말이다. 친구 손에 당근케일주스가 들려 있다고 해서 그런 걸 배우게 되지는 않으니까. 안타깝게도 처음 피워본 팔리아먼트가 부드러웠다. 그런데 맛이고 냄새고를 떠나서 담배가 중독적인 가장 큰 이유는 모종의 행위성 때문인 것 같다. 가령, 어떤 방정식을 도저히 풀 수 없다면 그나마 시도해볼 수 있는 건 임의의 수들을 대입해보는 것일 텐데 물론 그렇게 해서 풀릴 확률은 매우 낮지만 그래도 계속 대입하는 이유는, 어떻게든 풀어내려 하는 의지를 실현하는 그 물리적인 행위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이 눈에 보인다는 것. 그게 연기(smoke)다. (연기smoke는 연기performance다? 죄송합니다.) 담배에 불이 붙고 난 후부터는 시간을 죽인다는 말이 더는 비유가 아니게 된다. 모든 흡연자는 킬러들이다. 타들어가는 연초와 바닥에 짤막짤막하게 떨어지는 재,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내뱉는 호흡들. 죽어가는 시간은 허공과 바닥으로 토막 나서 떨어진다.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막 죽은 시간의 잔해들이다.
종류
한때 커피보다 커피우유에 꽂혀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는 편의점에 입고되는 모든 종류의 제품을 마셔보고 최고의 커피우유를 찾아나서는 게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제의였다. M사와 B사의 제품이 당도나 커피농도, 음료의 질감의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도 있었고. 에, 담배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동안 피워본 담배는 다음과 같다:
- 팔리아먼트 원 (에이포용지의 맛, 가장 기본의 백색그라운드. 깔끔하다)
- 뫼비우스 노란색 1미리 (리외꺼)
- 말보로 화이트 프레쉬 6미리 (경험상 이게 최고인데 6미리라서 안 피운다)
- 말보로 아이스블라스트 (굳이 말보로라는 브랜드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피울 이유가 1도 없다)
- 던힐 파인컷 시리즈 (얇아서 좋지만 얇아서 아쉽다)
- 보헴 쿠바나 샷 (나의 현 동반자)
- 보헴 미니로스트 (무게감 있는 바닐라향이 나므로 가을 겨울에 딱이다 지금 구입해볼 것)
- 보헴 슬림핏 브라운 (레몬향이 은은하게 난다 멘솔이 아닌 레몬의 상큼함을 원한다면 추천)
다 적기엔 줄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이쯤에서 끊자. 리스트에서 이미 읽히다시피 나는 멘솔파다. 저 중에서 늘 들고 다니는 건 보헴 쿠바나샷(더블은 좀 과하게 느끼하다)이고 리외가 줬던 뫼비우스 시리즈는 안타깝게도 나와 잘 맞지 않았다 흑흑. 보통 굵은 것 한 갑과 얇은 것 한 갑을 같이 들고 다니고 섞어서 피운다. 보헴(KT&G) 제품은 거의 모든 라인이 나와 잘 맞다. 뭐든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방황하다 보면 나의 취향을 알게 된다. 물론, 리스크는 감수해야 한다. 한 번은 한 개비만 피우고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린 적도 있었다. 음… 아닌 건 어쨌든 아닌 것이다.
라이터
라이터를 자주 깜빡하는 성격이라면 집에 라이터만 20개를 넘게 모아두는 보관함이 생겨난다. 보통 1100원 정도하는 터보 라이터가 제일 많고 가끔 투명한 플라스틱의 알록달록한 라이터들이 있다. 가격은 그보다 절반 정도 싼 600원(편의점)이고 어쩌다 동네 마트나 슈퍼에서 파는 400원짜리도 있는데 편의점보다 마트에 납품되는 국산 라이터가 훨씬 좋다. 터보 라이터는 바람이 불 때 불이 안 꺼진다는 강점이 있지만 불이 예쁘지 않다. 휴대용 미니 가스레인지를 들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주머니에 부엌을 넣은 기분....) 400원짜리 국산 라이터의 불이 제일 예쁘다. 조심스럽게 붙인 양초 심지의 어른거리는 불꽃이다. 가끔 그냥 켜두고 보고 싶을 때도 있을 정도다. 아무튼, 라이터를 너무 자주 깜박해서 이제는 그냥 가방마다 라이터 한 개씩은 그냥 넣어둔다. 한번은 웨이터에게 성냥이나 라이터를 빌릴 수 있냐 물었는데 빌릴 수 없다고 해서 퍽 좌절했던 기억이 난다. 식당에서 불을 못 빌리다니 ... 이래서 가스불을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다.
장소
학교나 공공건물에서 생활할 때는 흡연구역으로 가지만 밤이나 새벽 시간의 동네에서는 골목마다 피울 수 있는 곳이 매번 다르다. 밤 시간이라면 쓰레기 수거차량이 지나가기 전의 시간에 누군가 잘 묶어놓은 그러나 틈이 조금 벌어진 종량제 봉투가 있는 전봇대 근처에서 피운다. 꽁초는 절대 하수구에 버리면 안 된다. 서울시에서 하수구 아래에 쌓인 담배꽁초만 수거하는 기간이 있을 정도로 많이들 버리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지난 여름 기후위기 폭우로 하수구가 범람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안에 수북이 쌓인 꽁초들 때문이었다. 꽁초는 반드시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만약 봉투가 이미 수거된 이후의 시간이라면 빈 담뱃갑을 들고 나가서 그 안에 꽁초를 모으고 담벼락이나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숨겨두었다가 쓰레기봉투가 어디선가 나타나면 그때 넣어서 버린다. 이런 상황적인 조건을 배제하고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담벼락 앞이다. 비스듬히 기대어 피고 하늘을 올려보는 걸 좋아한다.
풍경
8월부터 9월까지 특히 마감이 몰리면서 새벽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건 같은 별들이었다. (이김에 별자리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11월이 시작된 지금까지도 아직 생각뿐이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네이비와 블루와 블랙을 신나게 섞어둔 밤하늘에 쏟아져 있는 별들을 보면 절로 생각이 정리된다. 혹은 생각이 태어나기도 하고. 담벼락에 기대서 메모를 길게 작성하기도 하고 과부하 된 머릿속의 생각들을 분리수거 해 덜어내기도 한다. 쭈그려 앉으면 바닥 틈새로 피어난 풀과 들꽃 같을 자세히 보고, 가끔 분주한 개미들이나 거미줄에 멋지게 매달린 거미를 만나기도 한다. 동네 길냥이들은 상당히 자주 마주치고 그래서 이름도 지어줬다. 얼마 전에는 족제비를 쫓아가는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RIP)
담배를 피우면 자동적으로 무언가를 응시하게 된다. 그게 내 마음일 수도 있고 나를 훑고 지나간 타인의 시선이나 말들일 수 있다. 부유하던 것들이나 미루어둔 것들이 연기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담배에서 중요한 것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연기다. (전자담배에서 강조되는 것도 연기다. 연초보다 연기가 훨씬 더 선명하고 부피가 크다.) 어떤 효과가 가시성을 띤다면 비록 그것이 단지 찰나의 순간 동안만이라 할지라도 그 순간은 그 외의 순간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 지표가 연기인 셈. 일상 속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은 좋게 말하자면 독립, 나쁘게 말하자면 회피의 효과를 부른다. (담배가 다 타고 나서 재가 된 후에도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힘들 때에만 담배를 태우는 건 아니다. 원고를 보내고 나서 느린 기지개와 함께 피우는 담배는 세상에서 제일 시원하다. (그리고 제일 짧다.) 오랜만에 만나는 즐거운 사람들과 노나 피우는 술자리 담배는 그냥 그 자체로 즐겁다. 여럿이 피우는 담배에는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지나간 시간들 몇몇이 떠오르니 갑자기 혼자 나가기가 싫어지네.) 맥주잔을 두고 왁자지껄 하던 대화가 담뱃불 앞에서는 조곤조곤해진다. 그런 다정함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담배 앞에서만 드러나는 비밀스러운 모습이다.
걸어가면서 피우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나 주로 뒷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면 무엇이든 지켜보게 된다. 어제는 오랜만에 마주친 동네이웃에게 작은 아들이 (밥도 그렇게나 안 먹던 애가) 키가 커져서 참 다행이라고 연신 자랑하는 아주머니를 보았다. 가운데에 머리를 짧게 깎고 조신하게 백팩을 메고 있던 남학생이 무표정으로 머쓱해하는 걸 봤다. 길 한 가운데에 서서 즐겁게 손사래치는 두 사람을 보며 왜 그리 연신 웃음이 나던지. 마당에서 피우면 봄에 데려온 아기 올리브나무가 어느새 쑥쑥 커서 저 혼자 울창한 숲이라도 되는 마냥 가지들을 쩍 벌리고 있는 위태를 감상하게 되고 뭐, 그렇다. 담배를 들고 길에 나서면 담배보다 훨씬 더 좋은 것들을 마음에 담고 오는 경우가 많다. 담배를 끊으려면 두 손을 그저 풀어두고 그런 풍경들을 위화감 없이 지켜볼 줄 알아야 하겠다.
부록: 이별의 능력
담배는 (거의) 모든 예술인의 동반자다. 담배를 사랑하는 시인의 시 한 편을 같이 읽어 보는 것으로 이 재미없는 티엠아이의 목록을 정리하도록 하자. 당신이 흡연자이냐 비흡연자이냐에 따라 아래의 시는 완전히 다르게 읽힐 것이다. 어쩌면 아예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독해와 당신의 독해는 많이 다를 것이다 잘 읽고 비교해보시며 시 읽기와 담배의 즐거움을 담뿍 누리시길 바란다. (당신의 독해를 알 수 없는 나의 처지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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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김행숙, 「이별의 능력」 전문 (두번째 시집 『이별의 능력』, 문학과지성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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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당신은 담배의 은유가 아니라 차라리 당신을 사랑하는 ‘내’가 담배고 담배 연기다.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세계는 와장창 부서지고 있다. 내장이 연기 나는 굴뚝이 되고 혈관은 붉게 부글거리고 새들은 황지우의 말처럼 세상을 뜨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나’는 빨래와 낮잠과 명상을 이어간다. 실로 고도의 집중과 몰입이다. 또 그런 와중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라는 고백은 ‘내’가 가진 일상의 시간이 지닌 밀도의 정확히 60배만큼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담배 한 개비를 ‘내’가 태우는 데에 2분이 걸린다면 2시간 (120분)에 해당하는 담배의 개수는 60개다.) 이렇게 너를 열렬히 사랑하는데,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연에서 맑고 깨끗한 이별의 능력이 돋아난다. 담배를 태웠던 2분만큼, 후에 찾아오는 2분 동안 담배 연기는 사라진다. 나에게서 멀어진다. 그러나 흔적까지 사라지는 이 이별은 슬프지도 괴롭지도 안타깝지도 않다. 그저 담담히 옷을 벗을 뿐. 이별의 부정성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없다. 멀쩡하던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피워내며 그것이 가끔씩 빨갛게 반점처럼 익어 가다가 멈춘다, 끝. 이제는 키스할 때가 아니라 옷과 머리칼에 묻은 것들을 털어내야 할 때. 그것은 강한 욕망도 거부도 아니다. 그저 당연한 수순이다.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 최대치의 이별의 능력은 이다지도 투명한 자세인 것이다. 어쩌면 이별은 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것이 아니라 무수히 반복해야 하는 것이어서 그렇게 손을 흔들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담배의 순간은 언제 찾아오는 걸까? 그게 언제인지 우리는 알 수 있을까? 살아가면서 우리가 하게 될 마지막 이별은 언제일까? 그건 아마 내가 담배를 더는 피우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건 아마 내 생이 종료될 때, 그 때가 최후의 마지막일 것이다. 그러나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며 노래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피어오를 것이다. 마지막 이별은 없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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