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늦가을 새벽에 쓴 일기를 며칠 전 우연히 꺼내 읽었다.
“다닥다닥 비 온다. 여러모로 리듬이 망가진 나날, 그럼에도 더 헐겁게 웃는 나날이다. 많은 것들을 웃음의 소재로 삼으면서. 내 주변의 어느 것도 다치지 않게 보듬으면서. 겨울이 오고 있으니까. 다닥다닥.”
이즈음 내리는 비는 금방이라도 겨울이 끼쳐올 전조처럼 느껴진다. 나흘 뒤면 소설. 24절기 중 스무 번째 절기로,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때다. 이날 첫눈이 내린다고 한다. “소설 즈음 바람이 심하게 불고 날씨도 추워지며 이 무렵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무심한 얼굴로 ‘올해 첫눈’ 네 글자를 검색 창에 입력한다. 누군가 묻는다. “올해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첫눈이 언제쯤 내릴까요? 눈을 너무 좋아해서 빨리 내렸으면 좋겠어요! 올 11월에도 첫눈이 내릴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리고 답변. “12월에는 확실히 첫눈이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밑에 포인트로 감사를 표할 수 있다는 팝업이 떠 있다. 도움이 되었다면 포인트로 감사한 마음을 전해보세요. 12월에는 확실히 첫눈이 내릴 것 같다는 당연한 말이 도움이 되느냐고? 허공에 따져 묻고 싶어지다가, 누구든 멱살을 잡고 싶어지다가, 이내 깨닫는다. 그래, 내가 요즘 상태가 안 좋지.
힘들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어본 적이 거의 없다. 자존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혹은 자만심. 어느 쪽이든 내가 곪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로 힘든 건 힘든 축에 안 들지, 네가 힘들어봤자 ( ). 괄호 안에 무수히 많은 것을 쑤셔 넣을 수 있었다. 네가 뭐가 힘들어? 그 질문은 자주 나를 향했으나 때로는 타자를 향했다. 숱한 이죽거림의 역사. 네가 뭐가 힘들어? 고작 그런 걸로 힘들어하다니 나약하기는. 저 사람은 진짜 힘들어 본 적이 없나 보군. 타인의 우울을 멋대로 저울질하며 위안을 얻으려 애썼다. ‘마음과 힘을 다하여 무엇을 이루려고 힘쓰다.’ 애를 쓴다는 표현이 맞는다면,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했을까. 대체 무엇을.
6년 전에도, 지금도, 리듬이 망가져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스스로가 생경해진다. 괜찮을 수 있잖아, 이게 그렇게 힘들어? 네가 뭐가 힘든데?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머릿속 질문에 고개를 세차게 젓고 싶어진다. 추워져서 그런가, 이 계절이 매년 유독 힘겨웠던가, 돌아본다.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가장 힘들 때는 아무것도 적지 못했기에 남아 있는 기록이 있을 리 없다. 헐겁게, 간신히나마 웃을 수 있는 날에만 웃을 수 있다고 적는 게 가능했으므로.
꽤나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나섰다. 저요, 제가 하겠습니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언제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 약속은 지키는 사람,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어 다음에도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그렇게 나를 부단히 연출해왔고 그 포장재 덕에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고도 곳곳에서 별일을 다 받을 수 있었다. 누구든 어떤 일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지 궁금한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일상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를 어딘가에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처음인 듯한데……
‘번역가’라는 간단한 세 글자로 나를 소개하지만 실상 문학 단행본 번역만으로는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나오는 연구비로 조교 일을 하고(그나마 내년 2월에 끝나므로 내년 3월부터는 다른 일이 필요해질 것이다), tvN에서 방영되는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에 관련된 영어 리서치를 매달 수십 건 해서 고정 수입 4-50만 원을 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영국 헨리 8세 당시 유럽의 정황과 클레베 공국 지도를 찾다가, 미국 MTV에서 방영한 힙합 방송의 세부 내용을 찾다가, 히잡 착용 의무화를 두고 호메이니가 연설한 내용과 그에 관한 코란의 구절(24장 31절: “그리고 믿는 여자들에게 말하되 눈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평소에 보이는 것 외에는 몸을 드러내지 말라고 하라”)과 그 이미지를 찾는.
수년 전 일했던 EBS에서 알음알음 리서처로 편성기획부에서 요청하는 다큐멘터리 큐레이션 리서치를 비롯해 EIDF 프로그램북 번역이나 국제작가축제 영상 번역 일 등을 하고, 틈틈이 출판사에서 요청하는 외서 검토서를 작성하고, 지인들이 의뢰하는 번역을 하기도 하고, 유튜브 자막 번역을 하기도 하고, 올해 상반기에 ‘책방오늘,’이라는 동네 책방에서 독서클럽 3개와 삼양청년회관에서 독서클럽 2개, 하반기에는 공공네트워크(땡땡은대학)가 주관하는 출판 워크숍 2개를 진행했다. 지난 8월 말에는 낭독자로 오페라 갈라 공연 무대에 섰고, 이번 달 말에 쇼케이스를 하는 새 공연은 내년 무대화를 앞두고 있다. 그밖에 여기 적기 민망할 정도로 자잘한 일을 수없이 해왔다. 하고 있다.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한다.
공허를 덮으려고 일을 한바탕 늘렸구나. 공허를 덮으려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다 관두고 싶다, 전부 놓아버리고 싶어. 그 생각에 잠식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로 지쳐 있구나, 느끼면서도 낯설었다. 그 느낌조차도 오래 회피했다. 허겁지겁 일거리를 눈앞에, 머릿속에 욱여넣는 스스로가 지긋지긋해서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싶은 정도가 되었음을 인정하게 된 건 어쩌면 고작, 고작 며칠 전일지도 모른다. 툭하면 길거리에서, 방 안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운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건. 별일 없는데도, 별다른 사건이랄 게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인데도. (그러나 사실 수많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올해가 처음일 것이다. 힘들다는 말을 친구들에게 여러 번 하기 시작한 것이. 구체적인 계기를 찾는다면 있기야 있겠으나 사실은 아주 오래된, 불안과 불안정과 그로 인한 두려움이 내면을 지배해온 수 년 동안 쌓여 온 문장. 나 요즘 힘든가 봐, 말고 나 힘들어. 단정적인 문장. 나 힘들어. 왜냐고 묻는 누군가에게 답할 여유도 없을 만큼. 아무 때나 눈물이 터질 만큼. 왜냐고? 왜냐하면……
돈 벌려고 악착같이 따냈던 일들, 일을 위한 일을 지금까지의 강도로는 못하겠어. 마음이 많이 훼손되었다고 느껴. 이제는 내가 예전만큼의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뿐더러, 하루 종일, 매일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찾든 뭔가를 기계적으로 번역하든 얼른 쳐내려고 하는 일들을 이만큼은 더는 할 수가 없어. 못하겠다는 말도 올해 처음 제대로 입밖에 꺼내보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 안에 삶의 여러 가지를 정리하고 싶어. 대체로 난 이런 모양으로 살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었거든. 그런데 내가 너무 많이 분열돼. 조각조각 나버려. 무엇에도, 도무지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해. 자꾸만 도망치고 싶어져. 멍해지고, 어딘가로 치닫는 느낌이 들어. 너무 자주 화가 나. 무슨 말이냐면, 왜 이러냐면, 그러니까,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친구가 많다. 그들은 내게도 상담을 받아보라고 여러 번 권했다. 진짜 상담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농담처럼 툭 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한 번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고, 내 이야기를 꺼내고, 그의 반응을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한다는 게 몹시 부담스러웠고 사실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불신했다. 타인을. 그 전에 나를. 지긋지긋하게도 나를.
조만간 상담을 받으러 가기로 했다. 이 시기, 길게는 10년 정도를 지배해온 나의 어떤 시기와 이별하기 위해서. 이별은 어려울 것이다. 언제나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 약속은 지키는 사람,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어 다음에도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의 얼굴을 너무 오랫동안, 두껍게 입고 있었기에. 숱한 연습이 필요할 테지만 다른 누군가가 요구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오직 나를 위해 조금씩 거리를 둘 것이다. 어떤 사회학적인, 심리적인, 정치적인 분석은 차차 가능할 것이다. 가능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우선은 깊이 지친 내면을 다독여야 한다. 엄청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쓴다.
이별하다 보면 손돌바람이 칼바람으로, 살바람으로, 강바람으로, 왜바람으로, 서릿바람으로, 눈바람으로 변화할 것이다. 첫눈을 기다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12월에는 첫눈이 올 것 같다고 말하는 누군가를 무작정 비웃지 않기 위해서 우선 손돌바람을 맞이해야 한다. 그뿐이다. 바람을 맞으며 걸어야 한다.
역시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김이강 시인의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걸었지’ 낭독 링크를 걸어둔다. 낭독하다 울컥한 목소리를 그대로 녹음해서 업로드하는 뻔뻔함이 9년 전의 내게는 있었던 듯하고, 그래서 스스로는 결코 클릭하지 못하는 링크이지만. 아주 정확하게, 이 시를 끝없이 낭독하던 9년 전, 6년 전, 그리고 얼마 전으로 되돌아가는 순간들이 있다. 여전히 있다. 그 순간들과도 언젠가는 이별하게 될 것이다. 헐겁게 웃으면서.
https://soundcloud.com/rieuxchj/ekamwqgx1dd1?si=932be15faab24e3baa89dea078c74baf&utm_source=clipboard&utm_medium=text&utm_campaign=social_sharing
겨울은 길었고 우리는 걸었지
- 김이강
더이상 수선을 할 수 없을 만큼 낡아버린 코트가 내겐 한 벌 있지 짙은 녹색이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산책을 나가야지 오늘은 긴 잠을 잤어 오래 뒤척이지 않고 멈추지 않는 꿈을 꾸면서 등이 아프고 피곤해 영화를 보고 싶어 상암으로 가서 <몽상가들>을 보던 날을 떠올려 S양의 울음을 보았던가 바람이 많이 불어왔지 그날도 코트를 입었어 낡아버린 코트
모든 게 끝이 있지 응 모든 게 끝이 있지 스무 살처럼 푸른 나이도 푸른 관념도 푸른 희망도 응 모두가 희미해지지 붉은 고통도 선명한 사랑도 학교 안 커피집에는 에스프레소 새 컵이 나왔어
조그만 에스프레소 컵을 나는 좋아하지 흑빛도 쓴맛도 저 눈 감은 사람도 캠퍼스의 밤은 아름답지 나는 여름을 기다려 환상의 섬에 갈 거야 해변이 아담하고 인적이 드물다는 마을에서는 대마를 기르고 해 지는 바다에 떠 있다는
버스에서는 잠이 들어 나는 그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 기대어 잠드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고도 생각해 쓸데없이 우는 것이 미안하다고도 생각해 동물원에는 가지 못했어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도 못 봤어 오늘은 긴 잠을 잤거든 |